일상의 감동

시골 팔순 노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법

싱거운놈 2022. 10. 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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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계시는 팔순 노모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평범한 일반인이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느꼈던 평범한 경험들이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을 주고 공감을 받으면 서로 위로받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보통의 50대 가장들의 부모님은 시골에 혼자 거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시골에 가보면 아버지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어머님들은 나 홀로 거주하시는 분들이 많다. 연세를 보면 고령으로 80대, 90대 분들이 많이 계시고 경로당에 가면 70대는 막내에 속한다고 하니 웃쓸픈 현실이다. 자식들은 모두 시내로 나가서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시골에는 아기 웃음소리가 살아진 지 오래되었다. 어릴 적에 시집와서 대가족의 끼니 걱정을 하시며 밤낮없이 산이며, 들이며, 쫓아다니시느라 허리 한번 시원하게 펼 날이 없어졌다. 허리는 굽어서 보행기도 아깝다 시며 유모차에 의지하시고 다 달아 없어진 무릎 연골은 걸음, 걸음 삐걱이고 걸음걸음 통증이다. 이제는 너무 오래 살았다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시며 무릎 수술 잘 됐다고 자랑하시는 이웃집 어머니를 부러워하신다. 비 오는 날 무릎이 아파지면 큰 아들에 전화해서무릎 수술하신다고 병원 알아보라고 야단이지만 햇살 좋은 어느 오후에는 수술 안 하신다며 생떼 쓰신다. 새벽바람에 눈을 뜨시면 유모차부터 찾으시고 습관적으로 호미 챙겨 텃밭으로 나가신다. 혹시 주말에 올 자식들 생각에 감자 한고랑은 큰아들 준다고 고이 덮어두시고, 몸 약한 둘째 아들 우연히 뽑은 더덕 줄기 혹시나 길고양이 먹어 치울까 봐 창고 구석 한편에 고이고이 간직하신다. 시집간 딸자식들 시집살이 고달프다며 한 푼 두 푼 삼지 돈으로 보약 먹일 생각에 말마다 자식들 기다리는 맛으로 살아가신다. 위에서 보았듯이 팔순 노모의 자식별로 사랑하는 표현법이 다른 것 같다. 우리 또한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마다 마음이 좀 다름을 느낀다.


1. 장남에 대한 노모의 사랑 방법


큰아들에 대한 사랑은 엄청난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일단 아들을 못 낳고 있으면 시집살이가 고달팠다. 시집와서 남의 집안 대를 잇지 못한다고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고
아들을 낳기만 하면 기본은 한 것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위로 딸들이 많이 있어도 아들을 낳을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집안에는 8남매, 10남매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이상하고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 지금이라면 인생극장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올뻔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낳은 첫아들이라서 어린 시절에는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궁핍한 한 가정의 두 번째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어깨를 덜어주는 가장이요, 어머니의 남편에게서 받지 못하는 사랑의 위안이었다.
배고프다며 방안에서 울고 있는 동생들의 어머니 역할이자 바쁜 아버지를 대신한 엄격한 훈장님이기도 했다. 팔순의 나이에 장남은 기댈 수 있는 큰 산일수밖에 없다. 한없이 기대고 싶지만 한없이 어려운 것이 장남인 것 같다. 집안에 힘들게 해야 될 일이 생기면 큰아들을(장남) 부르신다. 집안에 어렵게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큰아들을 부른다. 재미있게 즐기고 맛있게 먹을 것이 생기면 딸들을 부르신다. 좋은 경치에 행복한 무엇인가를 보면 막내가 생각나신다. 큰아들은 대하기가 어렵지만 옆에만 있어도 든든하다. 큰아들은 말을 한다. 그렇게 웃으시며 , 동생들을 건사하시는 팔순 노모가 보기 좋다. 동생들의 즐거움과 행복함에 감사할 뿐이다. 머리 백발 팔순 노모의 건강하심에 감사할 뿐이다

젊음에 대한 생각, 젊음에 대한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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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 살아온 지금의 나는 젊다 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평범한 일반인이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느꼈던 평범한 경험들이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을 주고 공감을 받으면 서로 위로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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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큰딸에 대한 팔순 노모의 사랑 방법


큰딸이 첫 번째 자식이면 많은 구박을 받았다.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죄인이 된 듯이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든든한 살림밑천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시집살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가족들을 위해서 포기하면서 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팔순 노모의 허리의 짐을 들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동생들을 위해서 가고 싶은 학교에 가는 것도 포기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었다. 농사일에 , 밤늦게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부모님의 걱정들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는 존재였다. 배고픈 동생들의 끼니를 책임졌고, 똘똘한 동생들의 유치원 교사도 되어주었고, 이웃집 또래의 친구도 되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에는 팔순 노모의 주름이 큰딸의 얼굴에도 피어나고 따스하던 넓은 가슴 세월 속에서는 그냥 여자였다.
그런 큰딸에 대한 팔순 노모의 사랑은 감사함이다.
옆에 있어줘서 의지가 되었고 옆에 있어줘서 힘듬이 덜하였고 옆에 있어줘서 배고픔을 참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큰딸도 팔순 노모의 인생길을 걷는다. 큰딸은 웃는다. 지나가는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오래오래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세월에 감사할 따름이다. 팔순의 나이에도 찻길 조심하라고, 넘어질라 밤길 조심하라고. 아침밥 잘 챙겨 먹고 감기 조심하라는 팔순 노모의 사랑 표현이 아름답다. 큰딸은 웃는다. 지나가는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오래오래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세월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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